서양미술 순례: 분단과 고난, 그리고 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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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순례: 분단과 고난, 그리고 퇴영
  • 송필경
  • 승인 2024.01.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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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지난달 돌아가신 도쿄경제대 서경식 전 교수(1951-2023)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나서 하루 내내 읽었다.

선생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은 유신시절 통일‧인권운동을 하다가 박정희에게 가혹한 탄압을 받고 20여 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한 바 있다.

선생은 박정희가 총 맞은 다음해 일어난 광주학살의 그림자가 짙은 1983년 유럽의 미술관들을 순례하고 1992년 책을 냈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의 명작을 설명하면서 분단 조국의 아픔과 두 형의 고난을 잔잔히 이야기하고 있다.

서경식 선생은 스페인 마드리드 쁘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1840년 5월 3일 쁘린씨뻬 삐오 언덕의 총살」(아래 사진의 오른쪽 중간 그림)이라는 그림의 복제품을 샀다.

1990년 이 그림을 서울에 있는 형에게 주려고 가져오다가 세관에서 문제가 되었다. 아마도 내 생각엔 세관원들이 이 그림에서 광주학살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그림은 20세기 최고의 대작 「게르니카」를 그린 삐까소가 「한국전쟁」(사진 오른쪽 맨 밑)을 그릴 때 여러가지로 영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삐까소가 스페인전쟁 참사를 표현한 「게르니카」 역시 이 미술관 별관에 있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다음은 삐까소의 예술철학이다.

스페인전쟁은 인민과 자유에 대한 반동의 전쟁이다. 나의 전 예술적 생애는 오직 예술의 죽음과 반동에 대한 싸움뿐이었다.

이 철학에 대한 서경식 선생의 반응이다.

일본에는 전쟁에 협력한 그림은 있어도 「게르니카」에 비길만한 것은 없다. 전쟁 찬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하는 명인대가들이 전쟁에 협력한 그림을 그린 그 자체를 '없었던 일'처럼 괄호 속에 묶어 넣어둔 채 능청거리고 있는 퇴영적 정신에서는 「게르니카」가 태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스페인은 민중이 가까스로 공화정을 세웠지만 서구 열강의 무관심 속에 나찌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1936-1939)에서 승리하고 가혹한 독재정권을 세웠다.

서경식 선생은 마드리드 박물관을 순례하고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는 밤기차에서 이런 생각에 잠겼다.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는 반동과 손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 내달릴 듯 빠르고 세차게 흐름)가 되지만 대개는 맥 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흔히 낯 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린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배도 맺지 않는다. 그것을 역사라고 한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서경식 선생이 이 박물관에서 본 또 다른 인상적인 그림은 「모래에 묻히는 개」(사진 오른쪽 그림)이다. 작가 고야는 모래더미란 지옥에서 구제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자신을 묘사했지만 서경식 선생은 자신이 바로 이 개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헤어날 수 없는 모래더미에 묻히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이 상황을 무기력했던 촛불정부와 민주당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이들에게 가혹하게 손가락질하는 그 똑똑한 진보는 지금의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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