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파워' 빛난 우리 진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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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파워' 빛난 우리 진료단
  • 김기현
  • 승인 2007.04.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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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베트남 진료단 후기 연재]-⑤

 

일어나야 하는데 머리는 무겁고, 속은 울렁거린다.

역시, 어제 너무 많은 술을 들이킨 탓이다.
술 마신 다음날, 항상 하는 말이 버릇처럼 입밖으로 흘러 나온다.
'오늘은 정말 조금만 마셔야지!'
풋! 안마시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지나가던 개가 듣고 웃을 말을.....
술시(戌時)가 되면 뭔가 홀린 듯 또 술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8기 진료단.

내일은 없는 듯,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진료지로 떠나는 아침이면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인다.
진료에, 저녁행사에,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어김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진료지(따이선현)로 향하는 버스는 숙소가 있는 번화한 퀴논에서 한적한 시골마을로 들어선다.
야자수 나무와 건물만 쏙 빼버리면 우리 시골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가끔 시골길로 나섰을때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피곤함이 몰려올텐데도 출근(?)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나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까?

올해 따이선현 의료청에서는 치과진료만 한다. 한의사 선생님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다. 솔직히 더 아쉬운 건 친해짐을 미끼로 해서 혹시 신선불취단(?)같은 명약을 취득해 내공증진에 도움이 되고자 한 나의 바램이 멀어진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 명약보다 더 귀한 것들을 얻었으니, 그곳은 나에게 있어서 파랑새였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파랑새를 찾아 먼 곳을 돌아다니다 결국은 자신에게서 보게 되었다는 어린 시절의 동화처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3월 8일. 이날이 세계 '여성의 날'인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올해가 99주년 되는 해다. 미국의 한 피복회사 여성노동자 146명이 불에 타 죽은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여성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외치게 된지 99년이 된 것이다.

이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문화로, 직장에서는 남성중심주의의 구조로, 정치사회에서는 부당한 차별로 인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파워가 늘어가고 있다.

최초의 법무장관, 국무총리를 배출하기도 하고,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여성의 수가 예년에 비할 바 없이 늘어가고 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성 CEO도 이제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규모이다. 예술 문화부문에서는 이미 남성을 추월한지 오래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추행을 하고도 국민의 대표라고 여의도 어디에 앉아있는 뻔뻔스런 얼굴을 보며, 아직도 멀었다고 울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이번 진료단은 여성들의 전용무대, 그 자체였다.
이곳 의료청은 그녀들의 능력을 무한껏 발휘한 장이 되었다.

직책이 뭔지는 모르지만,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수첩을 들고 쉬지 않고 소리치고,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체크하는 그녀가 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웃음은 잃지 않는다.
치과진료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99.99%의 원동력. 참 고맙고 대단한 분이다. 마지막에 자신의 목소리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열심이었던 그녀. '똘똘한 친구'라고 했던 단장님의 평가가 그리 맞아 떨어질 수 없다. 이선영 선생님.

조근조근 말한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상냥하기까지 하면 그 무서움이란... 무조건 복종이다. 이전 진료단에 참가했던 선배들이 그녀 앞에서 순한 양처럼 되는 걸 보면, 역시 맞는 말이다.
카리스마는 완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멋진 스승이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지역, 평택에서 오신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윤정식 선생님.

나랑 동갑이란게 믿기질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 믿거나 말거나지만, 목소리가 크면 대체로 성격이 좋다. 나도 한때는 목소리가 컸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준다. 쫌생이가 되어 쉽게 화내고 삐진다.
그런데 그녀는 반대이다.
예전보다 오히려 더 커진 듯 한 목소리. 나이를 거꾸로 먹는가 보다. 화통하고 멋진 사나이 같지만 의외로 여린 감성의 소유자.
줄임말-원간-이 고유명사라는 원선아 간사님.(건치 서경지부 간사를 오래해서 다들 이렇게 부르는 것 같다.)

'똑 부러진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 내가 본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 그래서 똑 부러지지 않은 나를 보고 항상 한숨만 내쉬었을 사람이다.
이전부터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머나먼 이곳에서는 느슨할 만도 하건만, 그게 쉽게 용납되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그게 자신의 장점이자 매력이라는 걸,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 역시 건치를 떠났지만(?) 아직도 부장이라는 호칭이 더 편한 조순자 부장님.

그녀들의 합주는 환상적이었다. 가끔 삑 소리나며 어긋날 때도 있었지만, 서로를 격려해주며, 관객들과 호흡하며 그렇게 물 흐르듯 가고 있었다. 그녀들의 연주는 완벽하지도 못하고, 최고급도 아니지만, 인간적이다. 어느덧 그녀들의 합주는 우리 모두의 난장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키와 여린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녀들의 열정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진료단을 감히 <주체할 수 없는 여성의 끼가 지배한 진료단 designtimesp=13421>이라고 하면,
단장님이 화내실려나?


김기현(건치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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