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미FTA '그들만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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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미FTA '그들만의 대한민국'
  • 김의동
  • 승인 2007.04.0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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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지만 나도 조금씩은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학생시절에는 참으로 ‘근거 없는 낙관주의’라는 농담 섞인 비판도 자주 들을 만큼 사회나 역사에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정말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살아온 날들이 제법 조금씩 쌓여가면서 자기가 경험한 크고 작은 것들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면서 겪는 오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오류가 쌓이고 심화되면 역사와 민중 앞에서 겸손함을 잃고 지금의 노무현(굳이 대통령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처럼 오만해지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면 나의 낙관주의가 처음으로 상처를 받은 것은 아마도 92년 대선이 아니었나 싶다.

운동을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되었고 사실 그리 열심히 하지도 못했지만, 대선 전날 마지막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정권교체”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괜스레 목이 매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쓰라린 결과에 상처받으면서 나의 낙관주의는 근거를 찾고 성숙해져야만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번 한미FTA의 타결을 보면서 갑작스레 92년 대선 다음날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박재동씨의 가슴이 뻥 뚫린 사람들의 만화가 떠오른 것은 나혼자였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정보의 홍수라 할 만한 인터넷 시대에도 어차피 개인이 접하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정보의 취사선택에서 결국은 자신의 생각과 취향에 맞는 것들만 선택되고 흡수된다.

한미FTA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고 무슨 논리일까? 나 역시도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고 있고, 혹시나 그들의 말처럼 내가 너무 경도되고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들의 말처럼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언론에 보도된 협상내용 중에 아무리 열심히 찾아보아도 우리나라에 유리한 내용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고, 피해를 좀 줄이고 크게 손해 보지 않은 분야 정도는 대단한 성과인 것처럼 떠들고, 엄청난 확실한 손해나 치명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는 항목들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인 것처럼 당당히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희생을 감수하지도 않고 열매만 따먹을 사람들이 이처럼 당당히 희생을 요구하는 뻔뻔함에는 다시 한 번 어이없음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한미FTA로 인한 농업의 피해, 광우병 쇠고기의 연내수입재개, 유전자조작조사의 간소화, 의약품 값의 폭등과 이로 인한 국민건강의 악화와 건강보험재정의 악화, 투자자 정부 소송제와 비위반제소의 위험성과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미국기업으로의 유출 등은 FTA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확실한 피해와 위험성을 대개 인정하는 부분들이다.

또한 한미FTA로 직접적이고 확실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분야는 대개 자동차나 섬유 정도를 거론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우리 차의 관세철폐로 인한 가격인하는 2.5%수준이나 미국 차의 관세철폐로 인한 가격인하는 특소세 단일화 내용까지 합치면 거의 10%수준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의 대미수출이 수입보다 월등히 많지만 FTA로 인한 우리 업체의 혜택은 미미한 반면 미국 업체의 혜택은 월등한 것이다. 거기에다 미국 내 일본차들이 동일한 혜택을 받아 이들이 다시 한국으로 수출될 경우, 국내 자동차 시장의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섬유의 경우에도 현재 대미수출이 수입보다 10배 가까이 많지만 전체 대미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3%정도이며 그나마도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4%아래로까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섬유의 경우, 다소간의 이익이 예상되지만 대미무역 전체규모에서는 사실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확실한 경제적 손실과 농민들의 파탄, 투자자 정부 소송제로 인한 내정간섭의 위험성,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건강권에 대한 포기 등 FTA가 미치는 해악성과 위험성은 이미 많은 자료와 언론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도 이제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그들이 원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할 것쯤으로 뻔뻔스럽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IMF를 겪은 지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각종 경제지표는 10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10년 전보다 그만큼 살기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외환보유액은 넘칠 만큼 많아졌고,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선지 오래고, 종합주가지수는 4배가 넘게 올랐고, 경제성장률도 매년 몇 %니 하는데 실제 국내 경기는 항상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고 서민들의 생활은 IMF때보다 나아진 것이 별반 없다.

몇몇 대기업을 통해 수출이 크게 늘었지만 이들의 이윤은 국내에 투자되지 못하고 해외로 투자되고, 부유층의 자본도 부동산이나 해외유학, 여행 등으로 인해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은 열심히 일하며 성실히 살아보려는 보통 사람들에겐 ‘먹고 살기 힘든 나라’일 뿐이라는 것이 지난 10년이 증명해 준 셈이다.

FTA를 찬양하는 사람들도 FTA 자체가 대미무역에서 당장 이익보다 손해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대신에 FTA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구조조정하여 ‘기업하기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소리 높이고 있다.

나는 그래서 또한 FTA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서민들이 ‘먹고 살기 더 힘든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그리고 우리의 섣부른 포기 역시 역사와 민중 앞에서 또 하나의 교만일 수 있다.

가장 먼저 협정문의 완전한 공개를 요구해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여론화 작업, 그리고 실제로 한미FTA가 지향하는 그들만의 대한민국이 평범한 서민들이 원하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교육과 세제를 비롯한 내부의 개혁과 서민경제의 활성화로 우리도 충분히 경제발전과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으며 FTA나 외부 충격에 의한 미국식 체제의 도입은 이러한 평범한 서민들이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제도적으로 가로막는 것임을 알려 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국회비준 저지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포기할 수도 없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삶이 걸린 일이기에...

마지막으로 ‘한미FTA 중단하라’를 외치며 분신하신 노동자분의 빠른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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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2007-04-09 09:55:05
멋지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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