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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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 4
  • 이상윤
  • 승인 2007.07.30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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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임용이 된 첫해에는 그래도 강의 부담이 좀 덜한 편이었다.

일주일에 3시간씩 열 두어명의 대학원생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3시간의 강의를 위해 일주일에 2-3일은 거의 새벽 3-4시까지 강의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S박사가 새로운 지식을 배워가며 가르쳤을 리는 없고 자신이 십 수년동안 공부했던 전공내용을 학생들 수준에 맞게 리뷰하면서 정리하는 것이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S박사가 알고있는 강의준비 기본원칙은 1시간 강의를 하기 위해 10시간을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는 ‘분량’을 준비하라는 것인데 슬라이드를 아무리 많이 만들려해도 한계가 있고 또 시간을 때우기 위해 부실강의를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고생한 기억들이 생생하다.

한국말로 하는 강의 같으면 내용만 확실히 머리속에 정리해 넣고 들어가서도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비유를 섞어가며 농담섞어가며, 청중들 반응보아가며 느긋하게 할 수 있겠지만 영어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안된다.
역시 문제는 영어이다.

강의평가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전형인 미국에서 학생과 교수의 관계는 인간적인 관계로 얽히는 동양적인 사제관계는 전혀 아니고 고객과 상품판매자의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는 고객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구입한 상품을 평가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포장이 후지면 구매자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듯이 교수가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지식을 욕심껏 다 전달해주려고 시도해서는 낭패를 본다.

이 정도 학년수준이면 이정도의 지식은 알아야 한다고 교수가 판단이 되더라도 구매자의 수준이나 취향을 잘 고려해서 적당한 양의 지식을 전달해 주어야 평가가 유리하게 나온다. 그래도 첫학기에 대학원생들을 상대할 때는 상대적으로 편했는데 철없는 학부생들을 가르친 지난 학기는 평가가 극과 극을 왔다갔다하는 진땀나는 체험을 하였다.

학생들은 교수가 자신들의 성적을 매기는 ‘상사’이기 때문에 존중할 뿐이다. 미국에서 학생들에게 동양적인 스승으로서의 권위와 존경은 바라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전반적으로 인간관계가 ‘깔끔(!)’해진다고 보면 된다.

이것은 이미 S박사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경험한 바다. 학부에서 같이 공부한 동기들은 물론이고 많은 부분을 같이 공유한 박사과정동기들중에도 졸업한 이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같이 한국인들끼리만 가끔 서로 소식을 주고 받는 정도일 뿐.   

이런 ‘깔끔’한 인간관계는 교수와 학생들간의 관계뿐 아니다.

사실은 미국에서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고 보면된다. 직장동료인 선후배교수들은 그저 한 조직에 같이 소속되어 있는 개개인들일 뿐 한국적인 소속감이라든가 동료관계라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서로 만나면 인사도 안하고 모른 척하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모르는 사람끼리도 눈을 마주치면 - 우리나라처럼 ‘뭘봐?’ 하고 인상쓰는 대신에 – 눈웃음을 치며 ‘How are you?’ 또는 ‘Hi!’ 하고 인사를 한다.
하지만 조금 과장을 보태 인간관계는 그것이 전부라고 보면 된다.

물론 직장에서 단짝을 만나 서로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미팅에서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개인적인 ‘사건’이고, 같은 직장동료이기 때문에, 혹은 같은 조직 소속원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개인적인 애경사에 우리나라에서처럼 가족처럼 도와주고 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보면된다.
아마 미국인들은 그래서 정신과의사나 심리치료사를 많이 찾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같으면 직장동료에게 털어놓고 해결할 일도 서로 털어놓거나 들어주는 훈련이 전혀 안되어 있으니 쌓이고 쌓인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비싼(정말로 비싸다!) 돈을 줘가며 이야기 들어주는 전문가들을 찾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직장에서는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기 보다는 오히려 감추어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직장에서 갈등이 있다든지,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고민한다든지 하는 문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어떤 때는 직장에서 생기는 고민을 가족들에게조차 털어놓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직장동료에게 아무 넋두리도 할 수 없다면 답답할 것이다.

한데 신기하게도 미국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산다. 누구의 고민들 들어줄 의무도 없고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권리도 없는 사람들처럼.
치과의사들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처음 어느 지역에 누군가가 새로 들어오면 단지 같은 치과의사라는 것 때문에 환영도 해주고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두번 정도 반원들끼리 혹은 지역의 친한 사람들끼리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집안 이야기도 하고, 골치 아픈 환자에 대한 넋두리도 늘어놓고, 보험공단의 만행에 대해 같이 열받아 하고, 새로 나온 재료 이야기도 하면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하지만 미국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조직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며 관행적으로 전 조직구성원들이 같이 저녁시간을 내어 회식도 하고 업무외 시간을 공유하지만 미국은 업무시간이 지난 저녁시간을 내어 직장동료를 만나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 이다.

그것도 사적인 인간관계라기 보다는 크리스마스나 회사창립일 등 특별한 날에 회사사장이나 학과장등 보스가 구성원들을 초대하여 이루어지는 파티나 야유회등 어떻게 보면 공적 관계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한국적인 단합대회분위기가 아니라 맥주한잔 콜라한잔들고 서서 몇시간동안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그것도 ‘영어로(!)’ 주고받는 분위기라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는 고역이다.

S박사도 임용된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동료교수들과의 사적인 만남이라고는 한국인 선배교수와 점심시간에 한두번 같이 밥을 먹은 것이 전부이다. 사실 바쁘기도 바빴다.
한국에서는 교수가 되면 일단 한고비를 넘기며 여유를 가지게 되지만 미국에서는 테뉴어를 따기 전까지는 여전히 수험생처럼 전력을 다해야 한다. 주어진 기간안에 테뉴어신청을 해서 통과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짤리고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벽산책(The Cliff Walk)이라는 자전적 소설책을 보면 비교적 잘 나가던 주인공 영문학교수가 테뉴어에 떨어지고 100군데도 넘는 대학에서 취업거절편지를 받으면서 몇년을 생활고에 찌들리다가 결국 페인트공과 목수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문과교수답게 이 소설을 쓰면서 다시 재기하지만, 또 이과는 문과와 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테뉴어를 받지 못하고 해고되면 이과교수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테뉴어를 받기 위해서는 강의평가도 좋아야 하고 학위 논문발표 등 저술활동도 해야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돈(펀드)을 얼마나 끌어오느냐이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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