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보건의료]②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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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보건의료]②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김사라
  • 승인 2007.10.02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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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면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런데다가 영화적 재미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소장할 가치가 있을 것 같아 영화관을 찾지 않고 기다렸다가 DVD가 나오자마자 샀다. 몇 번을 반복해서 봤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 번 봤다. 볼 때마다 눈물을 찍어냈다. 강동원과 이나영의 배우 연륜으로 이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그 둘로 인해 영화를 더 쿨해졌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두 명의 의사가 나온다.

첫 번째 의사는 거듭되는 유정(이나영 분)의 자살시도에 대한 뒤치다꺼리를 때마다 해 준다. 유정의 외삼촌이기도 한 이 의사의 대사는 딱 한마디뿐이다.

"유정아, 나는 네가 좀 울었다면 좋겠다."

이 대사는 비오는 유리창 너머로 들린다. 이 말을 하는 의사의 얼굴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대사 하나만으로도 의사가 한 개인의 삶의 영역에 개입하고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개입이 한 인간의 아픔에 대한 이해에 근거했고, 개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아픔을 보듬어주기를 얼마나 원하는지도 읽을 수 있다. 무릇 의료인이라면 사람들에게 이런 도움을 주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고, 그 의무를 다하는 데서 직업적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이 의사가 사돈인 모니카 수녀(유정의 고모)와 함께 소외된 많은 이들을 돕는다. 특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의 심리 치료를 무료로 해 준다.

의사라는 직업의 연장선에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세상에 이런 의사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아픔이 줄어들고 행복이 늘어날까, 상상만 해도 좋다.

그런데 이 상상이 한국 사회에서 현실화될 날은 언제일까? 그런 가능성은 있을까?

영화에 나온 두 번째 의사는 이와 정 반대의 인물이다.

'괴물'에서 묘사된 의사들이 심드렁하고 무기력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면, 여기서 나온 의사는 더 적극적으로 무책임하고, 의사로서의 윤리성에서 문제가 있다.

사형수인 윤수(강동원 분)는 유정과의 만남 가운데 마음속의 큰 갈등을 맞고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실신하기에 이른다. 이런 윤수를 보게 된 교도소 내 의사의 대사는 두 마디이다.

"사형수면, 반성하면서 곱게 지내다 갈 것이지, 뭘 잘했다고 단식이야?"

교도관 이 주임(김신일 분)이 의사에게 말없이 힐난의 눈총을 보내자,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제 가야겠구만" 하고 자리를 뜬다.

세계의사협회의 윤리규정에는 자신의 의지로 단식 등을 하는 사람에게 강제로 영양공급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 의학 윤리에 어긋난다고 선언하고 있다. 물론 이견이 없는 바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이 의사, 자신의 의지로 단식하는 사람에게 영양공급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차원이 아니다. 뭐가 되었든 자기를 귀찮게 하는 사람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비 의료인에 비해 크게 떨어짐을 눈치 채고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 의사가 영화 속 교도소 내 의사이다.

내가 만나본 교도소의 의사들은 종교와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수인들을 대하고 있었다. 저런 사람을 진료하라면, 나도 참 짜증나겠다 싶은 수감자들을 진료하면서 심리적 갈등도 많이 느끼지만, 그들은 수년간 그 일을 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의사들을 수로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신에 병역 의무를 대신해서 교도소에 배치되어 있는 의사들을 떠올리면, 영화에서 나온 것과 유사한 대사를 현실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생과 사, 사법살인, 용서 등의 무거운 문제를 목전에 두고 인간의 근원적인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보내진 돌보미들은, 그들의 무거운 짐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할까?

이 영화에 나타난 보건의료가 더 큰 절망을 느끼게 한 것은 두 의사간의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이다.

갈등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문제는 유사하더라도, 각자가 처한 경제적 상황에 따라 개인 앞에 놓인 선택의 범위는 크게 달라진다.

그 범위 안에 인간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의료인의 범위도 크게 달라진다면, 그 달라짐이 학식이나 전문성의 차이를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 같은 것에 이른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불공평하다.

그런데 이 불공평이 영화에 그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착잡하다.

김사라(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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