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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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5
  • 이상윤
  • 승인 2007.10.03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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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학에서 펀드를 끌어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된다. S박사와 같은 정규교수는 그래도 학교에서 월급이 나오지만 연구교수(Research professor)로 임용된 사람들은 학교에서 월급을 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 월급도 펀드를 따와서 자기가 벌어야 한다.

S박사의 경우 교수임용이 확정된 후 학과장을 만났을 때 학과장이 충고하기를 테뉴어를 따려면 5년 안에 50만불 이상의 펀드를 끌어와야 한다고 했다.

S박사는 교수가 된 첫 해에는 집에 2시 이전에 들어가 본 적이 거의 없다. 돈을 따오기 위해서는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를 짜야하고 그것을 프로포절(proposal)로 만들어야 하고 여기 저기 돈 나올 프로젝트가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구해야 하고, 또 여러가지 인맥을 엮어 프로젝트 팀을 짜야 한다.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이 나오는 곳은 역시 국방관련 사업 등 정부 출연자금인데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S박사로서는 이 팀을 짜는 일이 특히 중요한 일이다. 누구를 같이 엮어서 프로포절을 심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감을 갖게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고민인 것이다.

다행히 S박사는 한국의 기업체연구소에서 일한 경험과 미국 주요 연방연구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펀드를 끌어오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같은 학교의 어떤 젊은 한국인 교수는 지도교수를 잘 만났는지 박사 후 연구원 과정(Post-doctoral course, 여기서 한국사람들은 줄여서 ‘포닥’이라고 한다)도 없이 바로 임용이 되었는데 테뉴어 신청마감 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학위를 마치고 바로 오는 바람에 인연의 끈도 짧고 경험도 부족해 고생하고 있는 듯 했다.

새로 교수가 되면 강의와 프로포절 준비 외에 또 하나 큰 과제가 있다. 학교에서 주는 종자돈(Seed money)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실험실을 꾸리는 것이다. 실험실을 꾸리는 데는 여러 장비와 기계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조교)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박사과정 학생을 한명 두는데 학비 등 1년에 최소 5만불 이상이 든다. 두 명만 두더라도 1년에 10만불이 든다. 포닥연구원도 1년에 7-8만 불은 잡아야 한다. 적지 않은 투자이지만 이들을 잘 끌고 나가야 연구성과가 나오고 그래야 또 펀드를 잡아올 수 있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미국은 돈에 민감한 사회이고 인간적인 관계가 ‘깔끔’하다 보니 가끔 학생들 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비와 생활비 명목의 장학금을 교수에게 받으면서도 다른데 – 예를 들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업체 – 를 기웃거리다가 그냥 나가버리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의 투자가 무의미 해지고 중장기 계획에 큰 차질이 온다.

그래서 학생들을 뽑을 때 신중해야 하고 뽑은 후에도 동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가차없이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종자돈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하는 교수 입장에서는 당연한 고민이다. 그래서 박사과정 학생이나 포닥을 뽑을 때는 주로 한국인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인들은 책임감도 있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믿을만(predictable)하기 때문이다.

작년 S박사가 처음 교수로 임용되었을 무렵에는 마침 학장이 바뀌어서 단과대학 전체가 어수선했었다. 미국 사람들은 권위에 대하여 무척 순종적이다. 그리고 이 권위는 한국에서처럼 연공서열이 아니라 보직(position)에서 나온다.

미국의 학장(Dean)은 한국에서처럼 일정 임기동안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신직이라고 보면 된다. 나이가 되었다고 학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단과대 안에서 자동적으로 다음 순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학장이 아주 결정적인 사유로 해고되든지, 아니면 대우가 더 좋은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공석이 되면 위원회가 구성되고 그곳에서 심사하여 지원자들 중에서 새로 학장을 뽑는다. 일단 학장을 뽑으면 학장이라는 포지션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진다.

이 대학에서도 학장이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모든 교수들에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제출하게 한 일이다. 그 프로젝트들을 검토하여 주어진 연구실공간을 재편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10년이상 터주대감으로 군림해온 노 교수들도 학장이 심사하여 결정하면 사용해오던 연구실을 빼앗기고 골방으로 물러나야 한다. 심지어는 과(科)를 없애기도 한다. 예를 들면 원자력공학과를 아예 없애고 그 일부분을 기계공학과로 통합한다든지. 그 과정에서 물론 해고도 있을 수 있고 원치 않는 보직을 받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학장의 결정에 대하여 감정적인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물론 학장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하여,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단과대 운영의 전권을 가지는 대신에 단과대의 성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권위의 행사는 과(科)에서도 마찬가지다. 과에서는 학과장이 왕(王!)이다. 권한이 막강하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임기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10년 20년동안 학과장을 한사람이 하는 경우도 많다.

또 일반 직장에서는 수퍼바이저(supervisor)라고 하는 상사의 지시에 절대 복종이다. 상사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이 보기에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같이 웃으면서 농담해가면서 격의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밖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실제로는 모든 조직내에서 한국보다 더한 위계질서가 잡혀 있고 권위에 대한 순종이 있다. 모든 구성원들은 각자의 생산성에 따라 포지션이 정해지고 일단 포지션이 정해지면 그 질서대로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이같은 것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어쨌든 S박사는 힘겹게 첫 해를 보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펀드를 따는 일도 열심히 한 덕분에 학교신기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2년만에 200만불 가까운 실적을 올렸고 이제는 테뉴어 걱정은 안해도 되는 상황이다.

영어의 한계와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교육(=training)을 받은 덕분에 힘든 과정을 잘 겪어왔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교육과정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엉망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는 입시위주의 교육이니 뭐니 하며 우리의 교육과정을 폄하하지만 그렇게 단련이 되었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헤치고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길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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