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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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이다.
  • 권호근
  • 승인 2008.01.18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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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한구강보건학회 2008년 1월호 웹진에 실린 연세 치대 권호근 교수의 칼럼이다. 본지는 필자의 동의를 얻어 글을 게재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으레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틀어놓는다.

빗방울 소리에 반주삼아 듣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 곡의 묵직한 현의 소리는 바쁜 일상에서 평소 내가 잊고 있는 나의 내면의 영혼의 세계를 다시 일깨우는 깊은 심연에서 올라오는 영혼의 소리이다.

마치 10년 전 새벽 4시 순천 송광사에서 듣던 100여 명 스님들이 올리는 장엄한 금강경  아침 예불소리를 연상시킨다. 첼로소리는 가장 인간의 음색을 닮은 악기라고 한다. 그래선지 나는 특히 반주 없이 연주하는 첼로 곡을 좋아한다.

최근에 우연히 황학동 벼룩시장을 기웃 거리다가 포장도 뜯지 않은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 전곡 LP 판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LP 판은 카잘스가 40년간 이곡을 절차탁마한 후 처음으로 녹음을 한 LP 판이다.

작년에 작고한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나, 마샤 마이스키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CD 판으로는 많이 나왔지만 전설의 첼리스트라는 카잘스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 LP 판은 매우 구하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도 포장도 뜯지 않은 새 LP 판이라면야 말해서 무었하랴.

하여간 돈을 달라는 대로 주고 구입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앰프를 키고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놓고 잔뜩 기대를 하고 카트리지를 올려놓았다. 묵직하게 들리는 첼로소리는 CD로 듣던 소리와는 다른 깊고 심오한 감동적인 소리이다.

파블로 카잘스가 누구인가?

바로 바하의 첼로 조곡 악보를 13세 때에 고악기점에서 처음 발견하여 연주함으로써 200년만에 이 아름다운 첼로곡을 세상에 소개한 천재적인 첼리스트 아닌가. 그러나 나는 레코드 집에 첨부된 파블로 카잘스의 삶을 소개한 작은 책자를 읽고 나서 음악 들을 때와 다른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그의 삶은 한편의 소설과 같고 마치 동양의 선승의 삶과도 같다.

카잘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고악기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 악보를 발견한 것은 그의 나이 13세 때이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4-5학년의 코흘리개 어린애였다.

그러나 이 어린애가 바하의 이 곡을 완전히 소화하고 연주하기 위하여 13년간을 각고의 노력과 연구를 하여 마침내 세상에 초연을 하게 되었고 그 후 40년간 연마를 한후에 처음 녹음을 하게 된다.

이로써 세상 많은 사람들이 200년 간의 시공을 떠나서 바하와 영혼을 교감하며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어디서든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빨리 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하여 대충 4-5년 연습하여 연주를 할 텐데 바하의 정신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13년 간의 연구를 하여 초연을 하였고 그 후  40년간을 연습한 후에 처음 녹음한 카잘스의 예술혼에 다시 감동을 받았다.
이 연주 후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떠오른 카잘스는 세상의 찬사를 받으면서 첼리스트로서 활동을 하였다.

그 후 그는 조국 스페인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  독재자  프랑코 반대편에 서서 열렬히 반 프랑코 운동에 참여 하였다. 이 당시 유럽의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 등이 반 프랑코 전선에 동참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것은 유명 한 일이다.
작년 여름 한국의 예술의 전당에서 사진전을 하였던 유명한 종군 사진작가인 로버트 카파와 카파의 친구인 소설가 헤밍웨이, 스페인 내전을 고발한 게르니카란 작품으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앙드레 말로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스페인 내전에 참전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독재자 프랑코가 승리를 하자 카잘스는 프랑코 독재 정권을 인정한 나라에서는 절대로 연주를 하지 않겠다며 자신이 좋아 하던 첼로 연주를 접는다.

당시 영국의 상무장관이 카잘스를 영국에 초청하려고 했으나 카잘스는 그는 정치를 말하려고 하나 나는 도덕을 논한다며 영국 초청을 거절 하며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은둔 생활은 피레네 조그마한 마을에서 열린 바하 사후 200주기 기념 음학회에 참여함으로써 끝난다.

그 후 1956년 푸에르토리코에 영주를 결심하고 이주한 카잘스는 80세때 20세의 젊은 여제자와 결혼을  하나 100세를 채우지 못하고 96세에 평소 아들과 같다는 제자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이 연주하는 바하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세상을 떠난다.

2년 후 젊은 아내와 제자 이스토민은 결혼을 하며 이 둘에 의해서 카잘스 페스티벌은 계속되고 있다. 카잘스의 삶을 보면 마치 소설과도 같고 좌우 보지 않고 거침없이 무소뿔처럼 앞으로만 가는 불교의 선승들의 삶과 같다. 이러한 스토리를 알고 난 후 나는 더욱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첼로 연주와 관련된  최근의 감동으로는 동지 섣달 가족과 함께 본 영화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이다.

보기 전에는 무슨 스토리의 영화인지도 몰랐으나 이 영화는  음악영화로서 첼리스트인 엄마와 기타리스트인 아빠 그리고 천재적인 작곡 재능을 가진 아들이 운명적으로 헤어진 후 음악을 통하여 서로 교감을 함으로써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는 영화이다.

본 수필의 제목인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고 영혼으로 느끼는 것이다”는 것은 영화의 대화 속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인 세계는 모두가 단절되고 분리 되어 있지만 우리의 정신세계는 보이지 않는 관계로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관계는 음악을 통하여 연결 될 수 있다는 동양적 세계관을 음악이란 주제를 통해서 잘 표현한 영화 이다.
특히 마지막에 엄마의 첼로소리와 아빠의 기타소리가 떨어진 장소지만 서로 교감하면서 하모니를 이루는 장면은 음악도 좋을뿐더러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어린애가 본 이 세계는 수많은 음악소리로 둘러싸여 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 자동차 소리, 벌레들의 소리, 이 모든 소리는 바로 음악이다. 그러나 이것을 귀로만  들으려고 하면 소음으로도 들리고 안 들릴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 느끼면 이세상의 모든 소리가 바로 음악이다. 음악을 듣지 않고 느낄 수 있어야 우리는 음악을 통해 모짜르트를 만날 수도 있고 베에토벤의 고뇌를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음악을 모든 예술 장르 중에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신년 새해에 우리 구강보건학회 회원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음악을 느끼고 즐김으로써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권호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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