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의 부조에서 크메르인들의 삶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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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의 부조에서 크메르인들의 삶을 보다
  • 이동호
  • 승인 2008.02.04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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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친구들 이야기⑩

 

오전 관광은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툼의 중심에 위치한 바이욘사원 탐방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앙코르유적의 규모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관광으로 그 십분의 일도 보지 못할게 뻔했지만, 우리는 조금을 보더라도 유적 속에 숨겨져 있는 옛 앙코르왕국의 흔적들, 그 중에서도 앙코르인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앙코르왕국의 기록들은 거의 남아있는 게 없고 단지 신전과 사원의 부조벽화의 그림으로만 동시대인들의 생활상을 추측해볼 수 있을뿐입니다.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유적들처럼, 문자기록의 부재는 앙코르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만들었는지도 모르지요.

위의 그림은 바이욘사원의 부조벽화 일부입니다. 잎이 풍성한 나무열매보다도 더 큰 물고기들은 톤레삽호수를 기반으로 번성했던 앙코르왕국의 풍요에서 톤레삽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크메르인들의 가옥 아래 출산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분만을 돕는 조산사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어서 그 어떤 문자기록보다도 더 살아있는 정보를 전해줍니다.

풍부한 과일들과 곡식들, 그리고 넘쳐나는 물고기들, 그리고 여인들이 다산은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막강한 왕국을 건설한 자야바르만7세 시기의 크메르 민중들의 삶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풍요로웠음을 보여주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앙코르와트는 3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70도 경사의 계단은 너무나 가파르고 계단의 폭 또한 너무나 좁아서 몸을 바짝 엎드리고 엉금엉금 기어오르지 않으면 눈깜짝할 새에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가끔씩 추락사고로 인해 목숨까지 잃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니까요. 아마도 인간의 세계가 아닌 신의 세계, 천상의 세계를 의미하는 3층의 5개의 탑을 오르는 일이 설사 왕이라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앙코르와트가 왕을 위한 거처가 아니라 희두교의 신인 비쉬누신에게 봉헌된 신의 사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2세기 초, 수르야바르만2세가 37년간에 걸쳐 지은 앙코르와트, 지금은 캄보디아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이자 캄보디아를 먹여살리는 귀중한 문화자산이 되었지만 당시의 민중들에게 앙코르와트는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해집니다.

앙코르와트 3층의 신전탑 내부 벽에 새겨진 압사라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알듯 모를듯한 천녀의 미소에 잠시 빠져듭니다. 오랜 비바람의 풍화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2층 외벽의 압사라들은 지금 독일기술진에 의해 복원보수공사를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십년이 걸릴 지 모르는, 아마 끝이 없는 보수공사가 될 것입니다. 이 귀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로 캄보디아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념으로 인한 외전과 내전 속에 앙코르유적들이 무방비로 방치되어 왔습니다.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겠지요. 전쟁 속에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겠지요.

3층 신전에서 겨우 내려와 1층의 정사각형의 회랑 외벽에 새겨진 부조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주로는 흰두설화들을 조각한 것이지만 후대의 왕들이 작업한 내용 중에는 이방민족들, 특히 베트남 중부의 참족과의 전투장면을 기록해놓은 부조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야바르만 7세에 이르러 앙코르왕국이 최고의 번영을 누리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참족을 완전히 굴복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자야바르만7세는 직접 자기 손으로 참족의 왕의 목을 베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오랫동안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형성된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 일본처럼 말이지요.

앙코르와트를 나서며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이 신전의 어느 한 귀퉁이의 그늘에 걸터앉아 무념무상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9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앙코르의 살아있는 일부가 되는 그런 착각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바쁜 일정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거의 세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원밖으로 나오던 오원장은 앙코르와트를 지키고 있는 인공호수 속으로 아이들을 따라 풍덩 다이빙을 합니다. 그는 온 몸으로 앙코르와트를 느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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