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 진료단] 전쟁박물관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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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 진료단] 전쟁박물관을 다녀와서
  • 박의영
  • 승인 2008.04.3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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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도착 첫 날 일정이었던 전쟁박물관 방문.
진료단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참여했던 전쟁박물관 방문은 베트남에 와서 처음으로 만나는 ‘전쟁의 기억’이었다.

전쟁, 서로 다른 기억

전쟁에는 흔히들 승자와 패자, 두 개의 기억이 존재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라 자칭하며 그 당시 얼마나 ‘용맹하게’ ‘정의롭게’ 싸웠는지를 회상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는 걸 보면 전쟁에 대한 기억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번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9기 진료단의 전쟁박물관 방문은 승자도 패자도 아닌 ‘사람들’의 기억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참혹함을 확인하기 위해 그 곳에 간 것이 아닐 것이다. ‘베트남전쟁’으로부터 우리가 찾아야 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 그 고통의 기억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기 위한 작은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쟁박물관의 관람의 동선과 전시관 설명을 맡아준 분은 원선아 간사님이었다. 처음 하는 전시관 설명이니 이해를 바란다고 거듭 당부하는 원 간사님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꼼꼼하게 전시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물론 정확한 ‘수치’와 ‘년도’에 대해 자신없어하는 모습에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거 아니예요?’ 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 박정희 군대라는 호칭으로 불린 참전 한국군
전쟁범죄박물관이라고도 불렸다는 전쟁박물관에는 베트남 전쟁의 진행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당시 미군의 야만적인 행위들, 민간인들의 희생, 그리고 전쟁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속에는 ‘박정희군대’라고 불리는 파병된 한국군인들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제일 많은 파병규모를 자랑했으니 눈에 뜨이는 것이 당연하리라.

원간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관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또다른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전시된 미국 무기들, 특히 총들을 진열해 놓은 곳을 구경하던 미국 남성들이었다.

북미영어 억양을 쓰는 것으로 봐서는 미국인들이 분명한데 자신들이 참전했던 곳에 다시 와서 ‘자신들이 썼던’ 총들을 사진 찍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전쟁박물관 방문 후기를 올려놓은 것을 보면 그와 비슷한 모습이리라. 아무리 지나간 기억은 ‘추억’으로 남는다지만, 아무리 ‘기억은 제멋대로’ 라지만 ‘전쟁’의 참상 앞에 ‘참전’의 영웅담만 기억하는 것이 소름끼치는 순간이었다.

전쟁박물관에서 어떤 평화를 말할 수 있을까.

원간사님의 설명과 함께한 단체관람이 끝나고 한 시간 남짓 개인관람 시간이 주어졌다. 베트남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는 곳과 ‘Surviving the Peace'라는 영국인 사진 작가의 사진전(현재 분쟁 지역의 민간인들과 지뢰희생자들에 대한 사진들)이 있는 곳을 다 둘러보고 잠시 의자에 앉으니 그제서야 곳곳에 전쟁 당시 쓰였던 탱크와 대포, 소형 비행기들이 보였다.

이것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법일까? 박제된 ’과거‘의 전쟁만을 전시해 놓은 느낌이었다.

전쟁박물관이라는 것이 태생적으로 전쟁의 ’승자‘와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알면서도 ’전쟁박물관‘의 방문이 과연 전쟁의 현재성과 그 ’고통의 기억‘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게 만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쟁박물관에서 내가 만난 ‘베트남 전쟁’은 현재의 기억이었다.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에서의 전쟁, 점령 이후 ‘전쟁’속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그리고 ‘전쟁’같은 삶을 사는 점령과 억압 아래 있는 사람들이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참전군인들의 고엽제 피해 소송과 피해 입은 민간인들의 고통의 대물림을 생각하면 베트남 전쟁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호치민이라는 도시, 경제성장과 시장자본의 유입이 지상과제가 되어버린 호치민에서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민간인 학살 지역에서 ‘사람’ 하나 하나로 만나지는 전쟁의 기억과는 달리 도시는 이미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전장에서의 기억과 역사를 잠깐 만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기억하게 만들까’ 하는 의구심은 민간인 학살 지역을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는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전쟁박물관 전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는 중 어떤 분이 또다른 어떤 분에게 ‘고엽제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신문 지상에서 고엽제와 관련된 소송과 피해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모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베트남 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고 그 고통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과의 화해와 연대를 바라는 것이 진료단이 베트남 방문에 두는 의미라면 전쟁박물관 방문을 통해 ‘전쟁’뿐만이 아니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료단에 처음 참가해 베트남을 방문하는 분들이나 베트남 전쟁이 낯선 분들을 위해서라도 베트남 출발 전 지역별, 병원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온라인을 통한 정보 공유나 강의 몇 번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하실 것이다.

모두들 업무와 일상에 바쁘겠지만 일방적 강의방식을 넘어서는 각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전쟁’에 대한 기억을 만나기 전에 구체적인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고  ‘평화’에 대한 고민들까지 나눌 수 있는 사전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면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9기 진료단 전체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참가자 각자가 찾을 수 있는 의미, 그래서 베트남에서의 일정이 끝나 돌아와서도 그 의미를 ‘실천’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본다.

박의영(경계를 넘어 상근활동가, 9기 진료단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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