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이름만 듣고는 생김새를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약재로 쓰일 때 불리는 이름이 그대로 꽃이름이 된 경우다. 글자만 보면 몸에 들어오는 바람(風)을 밀어내는 덩굴성 식물, 그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가지과(科) 식물이다. 하얀 꽃만 보면 ‘까마중’과 혼동하기 쉽고 보라색 꽃을 피우는 ‘좁은잎배풍등’은 가지꽃과 아주 닮았다. 제주에만 산다는 ‘왕배풍등’도 있는데 꽃과 열매만으로는 구별하기가 어렵다.
한더위 중인 8월부터 꽃이 핀다. 이른 갈바람에 낭창낭창한 몸매를 얼마나 뽐내던지 우포늪에서 꽃을 담다가 벌떡 일어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뿌리 근처의 줄기는 나무처럼 단단해 겨울에도 살아남는다. 추위에 잘 견디는 듯한데 웬일인지 중부 이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꽃보다 열매의 매력을 먼저 알게 된 몇 되지 않은 꽃 중의 하나이다. 열매는 초록으로 맺어 10월 즈음 제 색으로 익어간다.
그 빠알갛고 노란 열매는 온통 회색빛인 겨울에도 반짝반짝 빛나 굶주린 새들을 유혹해 기꺼이 먹이가 된다. 그렇게 먹혀야 또다른 다음 한 세대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는 열매가 노란 배풍등이 아주 귀해 멀리 기차를 타고 가서 담았는데 새들이 아닌 사람의 손에 의해 퍼지면서 여기저기 여러 곳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열매는 꽃이 진 자리에 저절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맺히는’ 것이다. 결코 알아주지 못하는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모여 맺혔고 다음 세대를 위해 말갛게 여물어가고 있다. 계절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