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신뢰기준, '쪽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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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신뢰기준, '쪽수' 아니다
  • 김철신
  • 승인 2016.11.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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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법 시행령 위헌판결을 지켜보며...

대통령의 어이없는 국정운영이 밝혀져 온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10월 27일, 헌법재판소에서 의미있는, 아니 당연한 판결이 나왔다. 인터넷신문법 시행령에 대한 위헌판결이다.

이 시행령의 주요내용은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하려면 취재기자 3명을 포함해 5명 이상의 기자를 고용하고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내도록 한 것이다.

즉, 인터넷 신문은 5명 이상이 모여서 하라는 것이고, 그 외는 신문등록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판결문에서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과 기술 발전, 매체의 다양화 및 신규 또는 대안 매체의 수요 등을 감안할 때 취재 및 편집 인력을 상시 일정 인원 이상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인터넷신문의 언론으로서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해당 조항은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입법당시 정부가 말하는 법령의 취지는 이랬다. 중소 인터넷신문이 난립하니 편향적 사고, 선정적 기사가 난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수주를 위해서 언론이 이런저런 나쁜행위들을 한단다. 이러한 것들을 유사 언론행위라 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서 법령을 개정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는 “000 역시 독보적인 볼륨감, 아찔”, “비키니 상의한쪽이~ ” 이런 제목의 선정적 기사가 난무하고, 광고를 위해서 언론이 해서는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중소 인터넷신문사들의 난립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5년 11월 처음 시행령이 나왔을 때부터 엄청난 논란이 되어온 법령이다. 1인미디어가 활발하고,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혼자서도 온갖 사업을 하는 시대에 갑자기 인터넷 신문의 자격조건을 강화해서 난립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1인 팟캐스트, 블로그, 신문을 넘어 1인 쇼핑몰과 사업체가 가득한 세상에 말도 안되는 법령이라 여겼지만, 이번 정부들어 더 말도 안되는 일이 많아서인지 세간의 관심을 뒤로 하고 법령이 2015년 11월 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정의당 등은 정보화시대에 역행하는 처사일뿐더러 과도한 언론자유의 침해를 이유로 들어 비판하면서 위헌신청을 했다. 그 결과가 이번에 나온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지만 이 법령이 가져온 혼란은 컸다. 직원수 5인이 안되는 무려 85%의 인터넷매체들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무리를 하기도 하고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것 아닌가 하고 궁리하기도 했다.

사람 수가 몇 명 이상 되어야 한다는 기이한 법은 개성있고, 특색 있으며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온라인 신문의 운영환경을 오프라인보다 더 경직되게 했다.

건치신문도 새로운 컨텐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골몰하기보다 사람을 뽑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경영수지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시간을 보냈다. 돈이 없고, 사람이 없어도 그야말로 열정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다양한 내용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반응과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던 인터넷 신문이 말이다.

선정적이라거나 판단기준 조차 모호한 편향적 사고라는 이유로 중소 인터넷 신문사들을 옥죄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위와 같이 선정적, 편향적 사고는 우리나라의 종편과 대형신문사들이 못지 않은 것으로 훨씬 영향력이 큰 이들이 저지르는 폐해에 대해서는 눈감으며 엉뚱한 이들에게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특히 너무나 자유로운 거대 기업집단들이 그 덩치를 갈수록 키우고 각종 횡포를 부려 중소기업들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때에 인터넷 언론의 영역까지 규모를 정해 관리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구시대적 발상이다.

이 법령은 위헌판결을 계기로 폐기되겠지만 이런류의 사고방식이 이번 정부에 아직도 가득하다는 것이 더 문제다. 사고의 차이를 편향적 사고로, 소수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생각들을 선정적인 것으로 몰아 붙이며 기존 틀을 강요하는 것. 사회경제, 문화예술, 인터넷언론에 이르기까지 어이없는 일들을 아무런 생각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생각없는 정책결정들은 치과계의 조그만 인터넷 신문조차 그야말로 쪽수로 승부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화 선진국으로 인터넷공간에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치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법령이 추진된것은 사이비 교주탓이다, 그 조카탓이다. 말들이 많다. 그 사이비 교주같은 이를 처벌하면 해결될듯이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눈 부릅뜨고 싸우고 지켜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자유와 권리라도 저절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정부는 똑똑히 가르쳐주고 있다.

잘못하면 이들이 나중에 컴퓨터 모니터 크기는 한평반이 넘어야만 인터넷에 등록한다거나, 자판의 무게는 두근 반이 넘어야한다는 희한한 발상도 나올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독보적인 볼륨감 아찔’, ‘비키니 한쪽’ 어쩌고 하는 기사는 대한민국 최대 신문회사들의 홈페이지에서 바로 눈에 띄는 기사였다.

그나마 덜 선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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