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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감격의 한일전 어디?영화 역사에 말을 걸다- 다섯 번째 이야기
박준영 | 승인 2019.03.12 16:47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2주차 금요일에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네이버영화)

3.1운동 100주년이 지나갔다. 조금 있으면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여러모로 뜻깊은 한 해이다. 영화계도 이런 이슈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유관순을 소재로 만든 ‘항거’를 비롯하여 관련 영화들이 개봉했거나 대기 중이다.
 
그중에서 블록버스터급인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는데 아쉽게도 많은 논란만을 남긴 채 서둘러 극장에서 내려지고 있다. 150억을 투자하여 400만 관객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이 영화는 겨우 20만 명도 들지 않은 최고의 망작이 되고 말았다. 

무엇이 그렇게 영화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일까?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 영화적 상상력과 새로운 창작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허구와 왜곡이 도를 넘어섰다. 엄복동이 일제강점기에 뛰어난 실력으로 자전차 대회를 평정하면서 우리 민족의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줬던 나름의 역할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전차를 훔쳐 되팔아 당시 일제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던 사실은 완전히 지워졌고 오히려 자전차를 도둑맞은 피해자로 엄복동이 둔갑한 영화 스토리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둘째는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다. 애국단이라고도 불리는 이 독립운동 단체는 그 정체가 모호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10년에서 20년대 초로 추정되는데 김구의 대한애국단과 김원봉의 의열단은 20년대 중반에서 30년대 초 주로 활동했던 단체이다. 엄복동의 활약 시기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지만, 극적 전개상 앞당긴 걸로 보인다. 뭐 이정도는 좋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후에 엄복동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제2의 영화 ‘덕혜옹주’가 돼버린 꼴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그리고 마지막은 심각한 수준의 연출과 어설픈 CG로 말미암아 도저히 극에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중간에 감독이 바뀌었다고 해도 만듦새가 요즘 영화 답지 않게 엉성하고 어설프다. 캐릭터가 뿜어내는 국뽕과 올드하고 엉성한 이야기 전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사건과 갈등의 해소도 단선적이며 퇴행적이다. 이 정도로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한국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이범수 배우이자 제작자는 판단한 것일까? 

엄복동은 말년이 좋지 않았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 자전거” 라는 노래가 조선 백성들에게 불리울 정도로 민족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았지만 해방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더니 또 다시 현행 자전차 절도범으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한때 영웅으로 숭배했던 인물의 나락은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의 카피는 ‘최초의 한일전’이라고 했지만 엄격하게 보면 일제 강점기라 국가 간의 대결이라 보기 어렵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일제는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전조선자전차대회’를 만든다. 조선총독부 주관의 이 대회에서 그간 일본 선수들이 압승을 거두어 조선 백성들의 사기를 꺽었다. 자전차 경주의 승리로 민족의 사기를 고취할 수 있다고 믿는 독립운동가 황재호(이범수)는 엄복동(정지훈)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선수로 키운다. 엄복동은 체력과 근성을 발휘해 첫 출전부터 우승을 하게 되고 민중의 영웅으로 탄생한다. 애국단의 행동대원 김형신(강소라)과도 로맨스가 이어진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를 연출한 김유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배우 이범수의 제작 데뷔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투자사는 주식 하는 사람은 모두 들어봤을 셀트리온이라는 바이오회사다. 이 회사가 영화 제작사를 만들었고 대표를 이범수가 맡게 된다. 이범수로선 첫 번째 제작 작품이지만 돈도 잃고 모양새도 빠지게 생겼다.

(출처 네이버영화)

차라리 인간 엄복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의 승리와 타락과 몰락을 진지하게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전차 경기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마치 강박처럼 독립운동에 총독 암살사건까지 묶어봤지만 자전차와 암살사건은 전혀 이음새가 없어 보인다.

감격의 한일전 그릴 영화를 고대하며

사실 일본과의 경기는 이미 감격할 준비를 하고 본다. 그만큼 한일전은 감동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이변이 속출했으며 뜨거운 눈물까지 쏙 빼게 만들었다. 가위바위보도 일본에 져서는 안 되며 일본에게 질 바에야 현해탄에서 빠져 죽으라는 협박을 받을 정도로 한일전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었다. 대표적인 한일전 경기가 머리에 떠오른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과 2015년에 일본에서 벌어진 야구프리미어 리그12 준결승전 경기는 지금봐도 울컥하게 만든다. 8회까지 일본의 괴물투수 오타니에게 타선이 꽁꽁 묶여 있다가 마침내 대역전극이 일본 도쿄돔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나이드신 분들이라면 김일과 일본의 영웅 이노키와의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 김일의 박치기가 터졌던 순간이 기억날 것이다. 동네에 몇 안되는 TV브라운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박치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마치 나라를 되찾은 그 날처럼 벅찬 함성을 내질렀던 추억말이다. 

(출처 네이버영화)

가슴 뛸 준비가 되어있는 한일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아쉬운 흥행을 보여준 ‘자전차왕 엄복동’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자전차 왕 엄복동’이 실패라면 다음에는 ‘박치기 왕’ 김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못다 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다. 누가 준비하고 있으려나?

박준영  gcnews@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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