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숙 본부장 "상병수당제 도입해 의료안전망‧사회안전망 만들어야"
노동자가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려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해봤자 무슨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속수무책이라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무슨 돈이 있어 치료를 받겠으며 그날그날 노동으로 먹고 사는 터에 무슨 시간이 남아돌아 한가하게 치료를 받고 앉아 있겠는가? 대책이 있다면 오직 병이 깊어진 후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해고당하는 것이다.
- 『전태일 평전』, 4번째 색깔캠페인 낭독 부분 중에서 발체
"반복되는 재난과 위기 속에서 누구라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즉각 상병수당제를 도입하고 사각지대 없는 의료안전망,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태일재단 등 전국 170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가 주관하는 4번째 '전태일 50주기 색깔캠페인'이 오늘(3일)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 주최로 열렸다.
‘코로나19 영웅’이라는 칭송 이면에 만연해 있는 의료현장 속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리고, 현재 정부가 권고하고 있는 '아프면 쉬기' 방역책을 지킬 수 없는 비정규직·취약계층 노동자들도 아프면 쉴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청년 전태일이 꿈꾸었던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촉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개최된 이날 색깔캠페인은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의 여는 발언과 보건의료노조 대전충남지역본부 조혜숙 본부장의 『전태일 평전』 낭독 및 발언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전태일재단 한석호 기획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캠페인에서 이수호 이사장은 "50년 전 이 옆자리에서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돌아가셨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전태일 동지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이 자리에 보건의료노동자 동지들이 모였다"면서 "전태일 동지의 마음으로 자신의 몸까지 희생해가면서 환자들을 돌봐온 보건의료노동자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나마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대처를 잘 해왔다고 세계적인 칭송을 듣고 있는 것"이라고 치하했다.
아울러 그는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의 노력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묵묵히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법과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의료행위를 장사꾼들의 손에 넘겨주고자 하는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들과 함께 오늘 이 자리, 전태일 열사 앞에서 우리 사회를 돈보다 생명이 더 중요한 사회로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하자"고 고 강조했다.
이어 조혜숙 본부장은 "당시 평화시장에서는 13∼14세 여공들이 하루 14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그러면서도 하루 받는 일당은 70원 정도였다. 1평당 노동자 4명이 아주 비좁은 공간에서 실밥과 먼지, 그리고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르는 원단더미 속에서 일을 했다. 이처럼 사람이 밀집해 있고 먼지와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도 작업장에는 환기장치도 없었다"며 『전태일 평전』 중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해 언급한 101쪽∼103쪽의 내용을 낭독했다.
또한 그는 낭독 후 발언을 통해 "열사가 분신한지 50년이 지난 오늘도 산업재해로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떠한 매뉴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서로의 지혜에 기대어 현장에 투입됐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보건의료현장은 인력이 부족하기로 유명하다. 코로나19을 극복하고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조 본부장은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다가간다. 의료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있으며 또한 최근 코로나19 대규모 확진이 일어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투잡, 쓰리잡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며 "아프면 3∼4일 쉬기라는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상병수당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것이 집단감염을 막고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역책"이라고 피력했다.
다음은 이날 색깔캠페인에서 조혜숙 본부장이 발언한 내용 전문이다.
○ 당시 평화시장에서 열서너살 여공들이 하루 14시간 이상의 장시간 중노동을 하고 받는 일당은 70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작업환경이었다고 합니다. 평당 노동자 4명이 비좁은 공간에서 실밥과 먼지가 풍겨 나오고,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르는 원단더미 속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밀집되어 있고 악취와 먼지가 많이 풍기는데도 불구하고 작업장에는 환기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낭독할 부분은 이러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해 서술한 부분입니다.
○ 50년이 지난 2020년 오늘도 산업재해로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불태워 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하였던 그 날로부터, 우리 사회는 산업재해와 코로나19라는 재난에서 노동자들을 얼마나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는지요. ○ 저희는 보건의료노동자입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떠한 매뉴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서로의 지혜에 기대어 현장에 투입되었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보건의료현장은 인력이 부족하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의료재난 앞에서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소명으로 코로나19 최전선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 우리를 영웅이라고, 전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방호복을 입고도 감염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여기 코로나19 맞서 사투를 벌이고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일반병동으로 출근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가족과 환자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걱정을 품고, 스스로가 코로나19의 숙주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품고 일터로 향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자가격리기간과 충분한 휴식이 주어져야 합니다. ○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다고 하지만 보건의료노동자뿐 아니라 각계각층 구석구석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로 우리 공동체가 지켜지고 있습니다. 각자 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 공동체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 하지만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향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대규모 확진이 일어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투잡, 쓰리잡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아프면 3~4일 쉬기>라는 정부의 개인방역수칙은 인력이 부족한 사업장, 생계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노동자에게는 지켜질 수 없는 방역수칙입니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정부가 책임지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것이 집단감염을 막고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역입니다. ○ 아파도 쉬지 못하고 출근해야만 했던 노동자, 공공의료 시스템의 결함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음에 이른 환자, 취약계층에까지 가닿지 못한 보건의료시스템을 교훈 삼아 코로나19로 맞이한 위기를 취약한 보건의료체계의 획기적인 개선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 또한 코로나19로 마주한 경제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고,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보험 같은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코로나19의 또 다른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 반복되는 재난과 위기 속에서 누구라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즉각 상병수당제를 도입하고 사각지대 없는 의료안전망,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누구나 아프면 쉴 수 있는 세상,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가 우리 공동체를 지켜내고 코로나19를 극복하는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