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너무 가물었거나, 때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거나, 가을장마로 물이 불어 접근을 못했거나, 잠겼다 깨어나 몰골이 말이 아니거나, 끝물이어서 꽃빛이 희끄무리하거나…

그동안 만난 ‘분홍장구채’에 관한 기억이다. 처음 만나러 갔을 때가 그나마 제일 풍성하고 꽃빛도 똘망했는데 그때는 담는 실력이 바닥이었던 때라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꽃송이가 장구채를 닮았을까? 같은과(科) 식물 중에 ‘장구채’라 부르는 비교적 자주 보이는 두해살이 풀이 있다.

쭈욱 뻗은 전체 모습을 장구채라 말하지만 내 눈에는 꽃이 지고 씨앗을 날려 보낸 텅빈 열매집의 모양이 영락없는 장구채다. 장구를 치는 채는 두 종류인데 그중 끝이 동그란 ‘궁채’를 닮았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다. 남한에서는 지난 1974년에서야 채집이 됐다. 살고 있는 곳이 경기도 연천, 강원도 춘천, 영월과 철원으로 극히 적다.

햇볕이 잘 드는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백과사전과 국생종에는 10-11월에 꽃이 핀다고 적혀 있는데 이른 곳은 8월 중순부터 볼 수 있다. 춥고 그늘진 곳은 더 늦게 만날 수 있겠다.

꽃 밖으로 삐져나온 열 개의 하얀 수술과 갈라진 암술대는 분홍빛 꽃을 더욱 빛나게 하는 매력 포인트이다. 피어 있는 꽃들이 드물 때이고 사는 곳이 한정돼 있어 꽃쟁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높이 있는 것은 이제 망원렌즈로 담는다. 한발짝 물러나 담으니 한결 느긋하고 몸도 덜 고생이다. 간신히 바위에 발을 딛고 긴장하며 담던 시간도 분홍장구채에 대한 여러 추억에 하나를 더 보탠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