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3주기에 그의 정신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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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3주기에 그의 정신을 기리며…
  • 송필경
  • 승인 2023.11.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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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전태일의 친구들’ 송필경 이사장

1.    
전태일 정신은 ‘어린’, ‘여성’, ‘노동자’를 위한 ‘연민’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논리학, 수학, 철학 등에서 모두 뛰어난 20세기의 대석학으로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장가였다.

영국의 부유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했지만 반전‧평화‧인권을 외치면서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실천적인 대사상가였다.

러셀은 자신의 회고록 서문 첫 문장에 이렇게 썼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3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사랑하고자 하는 갈망, 지식을 얻기 위한 탐구욕, 고통 받는 인류를 위한 연민이었다.”

사랑과 지식, 연민 가운데 20세기 인류가 러셀에게 위대한 존경을 보낸 행위는 연민이었다. ‘연민’은 위대한 종교의 가르침인 사랑과 어짊, 자비와 다름없다. 삶의 목표가 사랑과 지식탐구를 넘어 ‘고통받는 인류를 위한 연민’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양심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20세기 미국의 지성이자 양심이라 일컫는 놈 촘스키( Noam Chomsky; 1928∼)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 걸어 놓은 러셀의 초상화 아래에 러셀의 위 회고록 문장을 붙여 놓았다.

전태일은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자집안에서 태어나 초등 2년과 중학 1년 과정만 다녔고 어릴 때부터 가출과 걸식을 반복하는 비렁뱅이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전태일은 수기에 자기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만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의 이 감정은 착한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성숙했다.

전태일의 가족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천막촌에 살 때 천막을 살 돈이 없었다. 남의 집 처마와 처마 사이에 나무막대를 세워 기둥으로 삼고 그 위에 비닐을 걸쳐 천장으로 삼았다. 바닥에는 거적을 깔고 살았다. 길가에 버린 곰팡이 핀 무말랭이를 주워 냇가에서 씻고 소금을 뿌려 끊여 반찬으로 먹었다.

그럼에도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 ‘노동자’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는 한없는 연민을 베풀었다. 어린 동생 전태삼에게는 이런 말을 했다.

“불우했던 과거를 원망만 하면 그 불우했던 과거가 삶의 영역에서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불우했던 과거를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 우리의 꿈과 이상과 비전을 가지고 불운을 희망의 새로운 미래 등불로 삼아야 한다.”

무지렁이 전태일의 지성은 20세기 최고의 석학이자 인류의 양심이라 일컫는 버트런드 러셀의 고귀한 지성에 견주어도 의미의 깊이와 폭과 무게에 있어서 한 치의 모자람이 없다. 전태일의 연민이라는 숭고한 감정은 러셀의 연민과 마찬가지로 그 본질과 핵심을 확대하면 위대한 인류애였다.

먼지 한 톨만큼도 이기심이 없는, 한가위 보름달보다 더 밝고 맑은 이타심으로,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면서 ‘사랑의 사자후’를 울린, 전태일 열사같은 인물이 인류의 역사에 과연 몇 사람이나 있었을까?

전태일 열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핍박받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사랑스런 동심’이라고 불렀다. 전태일 열사는 깨끗하지 않은 물에 살았지만, 더러움을 자신의 꽃이나 잎에 묻히지 않은 아름다운 연꽃이었다.

우리가 전태일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일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랑과 자비와 어짊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짐과 다름없다.

전태일 열사 53주기 기념식 포스터.
전태일 열사 53주기 기념식 포스터.

2. 
‘사단법인 전태일의친구들,은 전태일 열사의 고향인 대구의 시민들이 열사의 삶과 정신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지난 2018년 12월 준비위원회를 거쳐 2019년 3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지난 2019년 5월부터는 열사의 가족들이 살았던 대구시 중구 남산동 옛집 매입을 위해 시민모금운동을 전개했으며 각계각층 3천2백여 분들의 동참으로 약 5억5천만여 원을 모금했다. 2020년 11월, 열사의 50주기에는 남산동 옛집의 매입을 완료하고 ‘전태일’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전태일의친구들’은 건축가, 목수, 도시재생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전태일 열사의 가족들이 살았던 셋방의 터를 조사, 기초석을 발굴하고 유가족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옛집 고증 기록작업을 마무리했으며 전태일 옛집의 보존방향을 위해 심도 있는 논의들을 진행하고 있다.

논의의 과제는 크게 옛집의 용도와 보존방향, 그리고 건축을 위한 재정마련 방안이었다.

논의를 통해 우선 집주인이 거주했던 본채는 최대한 원형의 모습을 살리는 형태로 보존해 전태일 열사의 삶과 정신을 알릴 수 있는 기록관으로 건축하고 전태일 가족이 살았던 셋방터는 21세기 지금의 전태일 정신을 표현하고 담아낼 오브제 방식으로 재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무엇보다 시민과 노동자들의 기금을 통해 이룩한 성과인 만큼 지역의 공공자산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활용방안과 세부적인 건축방향은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완성해나갈 계획이다.

코로나19의 여파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속에 건축을 위한 재정마련 방안에 대한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으나 오랜 논의를 통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대지 않고 다시 한 번 ‘시민모금운동’(대구은행 504-10-351220-9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대구 전태일 기념관은 오는 2024년 9월에 준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민모금을 통해 총 3억 원의 건축비를 마련하고자 한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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