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를 치료하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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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를 치료하는 자, 누구인가?
  • 김해완
  • 승인 2020.01.07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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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11]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는 지난해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를 시작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쿠바 가정의들은 자신이 배속된 커뮤니티와 밀착해서 살아간다. 그 가까운 거리만큼 커뮤니티의 기쁨과 슬픔도 매 순간 함께 나눈다. 가령, 가정의는 동네에 사는 모든 아이들의 대모/대부와 마찬가지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한 생명이 세상의 빛을 향해 자라나는 순간마다 가정의의 섬세한 손길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또, 어느 골목 할머니의 장례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꼰술또리오에는 하루 종일 숙연한 애도의 물결이 감돈다.

노인의 생명의 불꽃이 매일 조금씩 사그라드는 동안 가정의 역시 그 내리막길을 천천히 동행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찾아왔을 때, 경제가 안 좋아졌을 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릴 때도 가정의는 이 모든 사건들을 피부로 직접 느낀다. 주민들의 일상에 파동을 일으키는 사건은 주민들의 건강도 흔들기 마련이다.

이처럼 커뮤니티는 또 다른 집합체, 곧 ‘신체’다. 별별 사건과 감정이 가로지르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자신의 생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생사를 통과해야 하는 의사는 이 버라이어티한 감정의 파동에 자기 식대로 익숙해진다. 무덤덤해지거나, 더 예민해지거나, 깊은 통찰에 다다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가정의들의 마음 한 쪽에는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은 좌절이 천 년 묵은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이 좌절의 정체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의 무너진 생활조건이다. 부서진 파이프 때문에 물을 낭비하는 상수도 시설이라던가, 오랜 기간 방치되어 벌레와 바퀴벌레가 꼬이는 쓰레기장이라던가, 당장 재건축에 들어가지 않으면 붕괴될 지도 모르는 낡은 건물이라던가, 걸러지지 않은 시커먼 매연을 그대로 뿜어내는 50살 된 올드카라던가. 이것들은 의료 바깥의 영역이다. 행정의 영역이자 정치 및 경제의 영역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손이 개입할 수 없는 이런 조건들은 주민들의 건강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두 손 놓고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기분은, 당연한 말이지만 좋을 수가 없다.

아직 의사가 되지도 않은 내가 벌써부터 의사들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MGI(Medicina General Integral; 종합 일반 의료) 수업과 뻬스끼싸(Pesquiza; 조사) 덕분이다. MGI는 의대생들이 예과 첫 2년 동안 일차 진료와 가정 의학의 기본기를 익히는 수업이고, 뻬스끼싸는 각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마다 의대생들이 파견되어 가정방문을 하는 활동을 뜻한다. MGI 수업의 핵심은 주민들의 일상에서 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인(Factor de Riesgo)를 신속하게 발견하는 것이다.

아바나 비에하의 낙후된 건물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빨래가 널려 있는 등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인다. (제공=김해완)
아바나 비에하의 낙후된 건물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빨래가 널려 있는 등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인다 (제공=김해완)

위험 요인들을 분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그 중 하나는 생활 구역을 따라 개인, 가족, 커뮤니티 순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대생들은 뻬스끼싸를 나가면서 비로소 자신들이 속해 있는 동네의 현실을 냉정하게 깨닫게 된다. MGI에서 배운 수많은 ‘커뮤니티의 위험 요인’ 중에서 도대체 시원하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쿠바의 자랑거리인 훌륭한 치안을 뺀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앞에서 의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사들이 당장 빗자루를 들고 동네를 쓸기 시작할 수는 없다. 패인 도로마다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쫓아다니며 (고인 물은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데 최적의 장소다)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낼 수도 없다. 의사의 어깨 위에는 이미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있는데, 거기에 새로운 임무까지 더 얹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MGI 수업은 이것까지 우리(의사들)의 문제로 끌어오지 말자는 결론과 함께 끝이 난다. 뻬스끼싸 역시, 군데군데 패인 물웅덩이에 애써 눈 돌리며 뎅게 환자의 숫자만 의무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커뮤니티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의사의 임무지만, 커뮤니티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의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현재 쿠바의 마을들이 앓고 있는 문제로 크게 세 가지를 꼽자면 물 부족, 집 공사 부족, 인력 부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 속에서는 이 중 어떤 것도 단기간에 개선하기가 어렵다.

우선 물 부족 문제부터 살펴보자. 열대 지방인 쿠바에서 전기 없이는 버텨도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커뮤니티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깨끗한 물이 집집마다 차질 없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즉, 상수도 시설이 생명인 것이다. 쿠바 전역, 그 중에서도 인구가 가장 밀집된 아바나는 식민지 시절 스페인 정부가 깔았던 상수도 인프라를 아직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그 시절의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훌륭하게 일을 해냈다. 그러나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파이프는 녹슬게 되었다. 그 결과 아바나에서는 50%의 물이 운송 과정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구멍 난 파이프로 다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때때로 쿠바 도시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새어나온 물이 작은 홍수를 만들고 있다. 아, 아까운 물!

파이프가 부서진 물탱크. 쿠바에서는 물탱크는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문제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다. (제공=김해완)

물의 절대량이 부족해지자 쿠바 정부는 마을마다 평등하게 물을 배분하기 위해 고육책을 짜냈다. 커뮤니티마다 물을 공급하는 시간표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운 좋게 멀쩡한 상수도 근처에 위치한 동네에는 물이 24시간 들어오지만, 그렇지 않은 동네는 48시간 중 12시간에서 24시간 사이에만 물이 들어온다. 그 동안 옆 동네는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렇게 물 공급이 제한되면 커뮤니티 역시 많은 준비를 해야만 한다. 우선 큰 물탱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용할 물을 넉넉하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물을 지붕의 물탱크로 끌어올릴 모터가 필요하다. 물탱크가 1층 바닥에 놓여 있으면 압력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에 1층에서도 샤워를 할 수가 없고, 2층에 사는 사람에게는 아예 물이 닿지 않는다. 문제는 모든 이에게 커다란 탱크와 전기 모터를 돈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탱크의 용량이 작으면 늘 상시적으로 물 부족 문제에 시달려야 한다. 또, 모터가 없으면 1층에 물탱크를 놓고 양동이로 일일이 물을 길어서 써야 한다.

물의 수질을 정화하는 것도 중요한 미션이다. 쿠바는 늘 습하고 뜨거운 열대지방이라서 박테리아와 모기 유충이 금방 생겨난다. 몇 년 전, 아바나 비에하(Habana Vieja)의 배관 시설이 심각하게 망가져서 결국 물차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집마다 물 배달을 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러나 이 조치는 결국 아바나 비에하 전역에 전염병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물이 고여 있는 상태에서는 위생 관리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집 공사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 또한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모두들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한다. 의학적 관점에서 ‘좋은 집’이란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라 햇볕이 잘 들어오고, 통풍이 자유롭고, 과도한 인구 밀도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 대비 공간이 넉넉한 집이다. 그러나 많은 쿠바의 가정집들이 짓다 만 ‘임시 상태’에 놓여 있다. 인구밀도가 특히 과밀한 아바나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2층을 공사해서 공간을 확장시키는데, 이 공사는 10년 이상 걸리는 게 다반사다. 자재가 부족하니 가격은 치솟고, 자재 가격이 비싸지니 돈을 모으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돈을 간신히 모았다 해도 당장 필요한 자재가 시장에 나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인부를 동원하는 것에도 다 돈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사는 지연된다. 공사 속도보다 집의 노화 속도가 더 빠를 지경이다. 만약 그 사이에 지붕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거나 창문이 깨지면서 물이 새기라도 한다면 큰 문제다. 모기로 인한 전염병이 돌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역시 아바나 비에하다. 아바나 비에하는 관광객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가는 곳이다. 식민지 풍 건축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여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풍경이 ‘유지 및 보수’가 아니라 ‘방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아바나 비에하의 뒷골목에 있는 많은 건물들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너무 허름해서 혹여나 건물 전체를 헐고 재건축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군데군데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인다. 이 정도의 낙후 상태는 정부가 집중적으로 주도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개선될 수가 없다.

마지막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쿠바에는 일 없이 노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일할 사람은 충분하지 않다. 월급이 낮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이 힘든 노동을 거부하고 현금을 만질 수 있는 관광업으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공중위생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직업인 청소부는 특히나 인기가 없는 직업이다. 길거리 청소부도, 쓰레기 청소부도, 병원 청소부도 항상 부족하다. 그나마 현역에서 빗자루를 들고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은퇴를 앞두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통제를 벗어난 위생은 커뮤니티를 상하게 한다. 질병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인구가 밀집된 아바나로 올수록 심해진다. 쿠바의 소도시들은 주민들이 자기 집 앞을 쓸고 닦는 것만으로도 청결하게 유지될 수 있지만 아바나에서는 불가능한 소리다. 길거리가 비위생적 상태에 놓이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하물며 비위생적인 병원은 말할 것도 없다.

병원 수에 비해서 전문 청소부가 부족한 상황이다. 꼰술또리오 청소는 간호사와 의사가 직접 하고 있고, 대형 병원에서도 위생 관리 부족으로 인한 감염 케이스가 많아서 장기 입원은 지양되고 있다. 입원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임산부의 경우는 가족들이 비누를 들고 와서 화장실 청소를 자발적으로 하기도 한다. 위생은 서양의학의 기본이건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쿠바의 수준 높은 의술은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병원 입원실. 이곳은 외국인 병실로 유지가 상당히 잘 되어 있지만, 다른 입원실에는 침대보가 없다. (제공=김해완)

그래서 말한다. 커뮤니티에도 ‘의사’가 필요하다고. 환자를 고치는 것은 의사이지만, 커뮤니티를 고치는 자들은 청소부들이고, 공사 노동자들이며, 도시계획자들이다. 이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의사의 노력도 별 소용이 없다. 일상의 기본부터 무너지기 때문이다. 최고의 치료법은 예방이고, 최고의 예방법은 건강한 일상이며, 우리의 일상은 커뮤니티에 빚지고 있다. 몸이 건강하려면 피가 원활하게 돌아야 하고, 잘 먹어서 뼈대를 튼튼하게 세워야 하며, 배설물들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커뮤니티가 건강하려면 물이 원활하게 흘러야 하고, 집들을 튼튼하게 세워야 하며, 그 사이에 낀 떼를 구석구석 씻어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쿠바의 힘든 현실 앞에서 힘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경제봉쇄가 매 순간 쿠바의 목줄을 조이는 데,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그렇다. 쿠바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싸워왔다. 그러나 이것이 안주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결국 의사는 건강을 위협하는 현실 앞에서 원칙을 해야만 하는 자다. 어쩌면 가장 원론적인 치료법은 커뮤니티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의사’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쿠바의 도시 트리니다드의 풍경. 길거리가 깨끗하다. 규모가 작은 도시들은 오히려 청결이 유지된다 (제공=김해완)
센트로 아바나의 길거리. 아바나 비에하만큼 낡은 건물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제공=김해완)
아바나의 길거리. 사진 속 인도는 그래도 유지가 잘 된 편이다. 구멍이 패여 물이 고여 있지는 않다. (제공=김해완)

 

김해완 (아바나 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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