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매개행위죄 존속, HIV 감염인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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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매개행위죄 존속, HIV 감염인 인권침해”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3.11.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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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 전파매개행위죄 합헌 판결한 헌재에 유감…“HIV 감염인 낙인 찍는 ‘전파매개행위죄’로는 감염병으로부터 사회 지킬 수 없어”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 26일 HIV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죄’를 합헌으로 판결했는데, 이는 HIV 감염인의 인권과 건강을 해치는 결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전파매개행위죄’는 HIV 감염인이 혈액 또는 채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법 조항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은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전파매개행위죄’는 진료 현장의 진보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인의협은 “이미 HIV 감염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할 수 있는 경구약이 개발돼 한국에서 사용된지 오래고, 하루 한 알만 복용해도 감염인은 합병증으로부터 건강할 뿐 아니라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수준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다”면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도 없다는 사실 또한 국제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들은 “혈중 바이러스 양이 미검출 수준으로 낮아지면 성적 접촉 시 콘돔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타인에게 HIV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라며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포함한 전 세계 102개국 1천개 이상 기관에서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인의협은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해 “위헌 정족수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재판관들 모두 미검출은 감염불가라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고, 이 법이 이러한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기 전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간 지속적으로 과학적 사실에 위배되는 인권침해에 항거해 온 HIV/AIDS 인권활동가들의 활동과 많은 보건의료인들이 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정책 수립을 요구해 온 성과”라고 평가했다.

헌법재판관 5인이 채택한 위헌의견을 살펴보면 “(본 법은) 감염인 중에서도 의료인의 처방에 따른 치료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까지도 예외 없이 전부 금지 및 처벌 대상에 포함해 이들의 사생활 자유 및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면서도 “이들의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의 전파 방지 효과는 불분명 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인의협은 “감염인의 일상행활을 범죄화하는 방식으로 감염병으로부터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면서 “질병으로 인한 낙인은 적극적인 검사와 처치를 어렵게 하고 감염인과 그 파트너간의,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등 전파매개행위죄가 존재하는 사회환경은 감염인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UNAIDS 낙인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비감염인에 비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2.4배 많았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의료기관에서 전파의 위험이 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감염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악화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인의협은 “우리는 코로나19 펜데믹 사태에서 낙인과 차별이 어떻게 사회 전체 건강을 위협하는 지 똑똑히 확인했다”며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는 개인을 범죄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평등한 돌봄을 보장할 때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이들은 “HIV/AIDS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세계 여러 국가들은 HIV 감염인을 특정해 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전파매개행위죄가 폐지될 때까지 차별없는 의료가 실현될 때까지 의료인으로서 감염인과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성명

HIV 감염인 건강 위협하는 전파매개행위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지난 10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전파매개행위죄'에 대해 합헌의견 4인, 일부위헌의견이 5인으로 위헌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 6인에 미달하여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전파매개행위죄'는 HIV감염인이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전파매개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법 조항이다. 우리는 건강과 생명,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중보건과 의료의 관점에서, HIV감염인의 인권과 건강을 해치는 '전파매개행위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전파매개행위죄’는 HIV에 대한 의료기술과 진료현장의 진보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미 HIV 감염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할 수 있는 경구약이 개발되어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 오래다. 하루 한 알의 복용만으로도 감염인은 합병증으로부터 건강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수준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도 없다는 사실 또한 국제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U=U’는 ‘미검출(Undetectable)은 감염불가(Untransmittable)’라는 뜻으로, 감염인의 혈중 바이러스 양이 미검출 수준으로 낮아지면 성적 접촉 시 콘돔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타인에게 HIV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포함한 전 세계 102개국 1,000개 이상의 기관에서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다.

위헌을 위한 정족수 6인을 채우지 못해 합헌으로 남게 되었으나, 이번 헌재 결정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판관 모두는 공통적으로 ‘U=U’라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며 이 법이 이러한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기 전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과학적 사실에 위배되는 인권침해에 대해 항거해온 HIV/AIDS 인권활동가들의 활동과, 많은 보건의료인들이 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정책 수립을 요구해온 성과이다.

다수인 헌법재판관 5인이 채택한 위헌 의견을 보면, “(본 법은)감염인 중에서도 의료인의 처방에 따른 치료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까지도 예외 없이 전부 금지 및 처벌대상으로 포함함으로써 이들의 사생활의 자유 및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이들의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전파 방지 효과는 불분명하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4인의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죄형을 통해 국민의 건강 보호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감염인의 일상생활을 범죄화하는 방식으로는 감염병으로부터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질병에 대한 낙인은 적극적인 검사와 처치를 어렵게 하고, 감염인과 그의 파트너간의/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을 저해한다. 2017년 UNAIDS 낙인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비감염인에 비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2.4배 더 많았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의료기관에서 전파의 위험이 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들이 알려져 오고 있다. 이는 결국 감염인의 건강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감염병 사태에서 낙인과 차별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지 똑똑히 확인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할 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질병을 범죄화해서는 안 된다.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는 개인을 범죄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평등과 돌봄을 보장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전파매개행위죄가 존재하는 사회환경은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공고히 하며 감염인의 건강권을 침해한다. HIV/AIDS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HIV 감염인을 특정하여 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24년 전인 1999년 HIV에 관한 별도의 법안을 폐지했다.

우리는 ‘전파매개행위죄’가 폐지될 때까지, 차별없는 의료가 실현될 때까지 의료인으로서 감염인과 함께할 것이다.

 

2023. 11. 2.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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