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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활발한 환자들[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7]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김해완 | 승인 2019.11.04 11:56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는 지난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를 시작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뽈리끌리니꼬와 꼰술또리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제공=김해완)

꼰술또리오에 앉아서 의료 현장을 관찰을 하다보면, 가끔씩 간호사인지 일꾼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린다. 그들은 의사가 마실 커피를 보온병에 가져오기도 하고, 선풍기를 고치기도 한다. 가운을 입지 않았고 책상 앞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의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스스럼없는 행동거지를 보았을 때 꼰술또리오에 소속된 사람인 게 분명하다. 누가 알겠는가? 날씨가 더워서 잠깐 가운을 벗어놓은 간호사일지도 모른다. 사치를 부리기 어려운 쿠바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옷차림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의사든 간호사든 일단 가운을 벗으면 동네 아줌마 아저씨와 다를 바가 없다. 혹은 늘 인력이 부족한 꼰술또리오를 위해서 뽈리끌리니꼬가 임시로 파견한 인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이들은 모두 환자들이었다. 병력이 긴 환자일수록, 그리하여 의사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주민일수록 꼰술또리오를 자기 집처럼 드나든다. 의사의 친구를 자처하며 커피를 챙겨주는 것은 예사이며, 꼰술또리오의 전구를 갈거나 문짝을 고치는 것과 같은 부수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를 자처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바쁠 때는 스스로 자기 엑스레이 사진을 장치에 부착하는 능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동선 속에서 이들은 아주 편안해 보인다. 마치 이들의 존재가 병원의 일부인 것만 같다. 병원에서 이렇게 적극적인 환자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쿠바 환자들의 이 활동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적극적인 환자 상은 헌신적인 의사 상과 짝을 이룬다. 의사들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고를 쏟아 붓는지는 이미 살펴보았다. 이를 읽은 독자라면 쿠바를 환자들을 위한 천국으로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자기희생을 하면서 무료로 돌봐주는 국민들이 지구상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렇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쿠바에서 환자가 되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의 서비스와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좋은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뽈리끌리니꼬와 꼰술또리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제공=김해완)
뽈리끌리니꼬와 꼰술또리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제공=김해완)

우선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는 서비스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병원은 경제봉쇄의 영향으로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환자들은 이를 ‘서비스 질의 저하’라고 비판할 수 없다. 애초에 이들은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치른 적이 없으므로. 게다가 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일선에서 최대한 막아내고 있는 의사들은 이미 과로에 찌들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가 가장 급하고 아쉬운 것은 누구일까? 당사자인 환자들이다.

그리하여 쿠바의 환자들은 자기 나름의 액션을 취한다. 이들은 병원과 의사를 도와주려는 협조적인 태도와, 의료인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활용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의약품을 얻는 생존전략을 동시에 구사한다. 즉,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스템에 난 구멍을 메우고 의료 정책에 일조하거나, 혹은 그 구멍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빼내는 것이다.

후자의 결과야 물론 누구도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쿠바의 의료 정책은 환자들의 적극성을 기르는데 확실히 일조해왔다. 가족주치의의 1차 임무는 주민들 사이에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촉진(Promoción)’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촉진을 주민들과의 상시적인 소통을 통해서 실천해야 한다고 배운다. 달리 말하면, 쿠바의 환자들은 의사의 지시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주체가 되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필요한 상황이 오면 주저 없이 입을 연다. 그렇다. 환자들이 의료 현장 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수단은 바로 말이다. 말, 말, 말. 쿠바 환자들은 모든 의사들이 인정하듯이 참 수다스럽다!

말이 많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첫째로, 이는 소문과 스캔들을 사랑하는 쿠바인들의 국민성을 반영한다. 연재 4회에서도 언급했지만 만인이 수다스러운 쿠바에서 예방 의학이 발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방 의학의 성공 여부는 주민들의 삶 속에 얼마나 밀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달리 말하면, 정보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환자들은 가족주치의에게 꼰술또리오 바깥의 커뮤니티 소식을 물어다주는 민첩한 정보원들이다. 옆집 뻬드로가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 앞집 마리아가 마이애미에 사는 친척을 보러 떠났다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지, 어젯밤 까를로스가 아내와 어떻게 피 튀기는 부부 싸움을 했는지…….

이런 사소한 소식들이 종국에는 모두 의료와 연결된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이 여행자 주민이 몸에 묻혀 올지도 모르는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되고, 가족 구성원의 오랜 부재는 남겨진 가족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근거가 된다. 부부 싸움 소식은 실제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육체적 상해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 일차 정보를 의료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의사보다 간호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몇 년에 한 번씩 바뀌는 의사와 달리, 간호사들은 평생을 같은 동네에 살면서 환자들과 우정을 쌓기 때문이다.

꼰술또리오 벽에 부착된 동네 정보. 여행을 갔다온 사람, 모기가 발견된 곳, 쓰레기가 모여있는 곳 등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황이 바뀐 소식이 들리면 이 또한 업데이트 된다. (제공=김해완)
꼰술또리오 벽에 부착된 동네 정보. 여행을 갔다온 사람, 모기가 발견된 곳, 쓰레기가 모여있는 곳 등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황이 바뀐 소식이 들리면 이 또한 업데이트 된다. (제공=김해완)

정보의 교환은 역방향으로도 일어난다. 환자들은 꼰술또리오의 소식을 커뮤니티에 전한다. 여기에는 꼰술또리오에 비가 샌다거나, 선풍기가 고장 난다거나, 전구가 나가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문제도 포함된다. 그러면 소문을 들은 몇몇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 여분의 전구를 제공하고, 연장을 가져와서 선풍기를 직접 고치기도 한다. 의사의 가난한 살림을 염려하여 쌀, 커피, 설탕 따위를 가져다주는 사람도 있다. 주민들이 문제 해결에 이처럼 적극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꼰술또리오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수다는 길거리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들은 길거리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타나기만 하면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그를 멈춰 세우고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종의 ‘즉석 상담 코너’라고 해야 할까? 상담 내용은 약국에서 여분의 진통제를 배급받기 위한 새 처방전을 써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고, 자기 몸에 새롭게 나타난 병증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혹은 멀리 사는 친척의 건강 상태에 대한 조언일 수도 있다. 의사가 현재 근무 시간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가족주치의에게 퇴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의사 역시 급한 일이 없다면 잠자코 서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좋든 싫든 간에, 이들은 병원 밖에서 만나는 주민들도 잠재적 환자로서 돌봐야 한다는 것을 의무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질문해오는 이를 거절할 힘은 없다. 의사들은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지만, 이 권위가 권력으로 전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의사를 존경하는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이 백의의 구원자들(salvadores)을 쫓아다닌다!

이런 손쉬운 접근성은 공공보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훌륭하다. 옆 나라 미국에서는 의사와 말 한 마디 나누려고 해도 십 만원은 드는데, 동네 어디서든 상담이 가능하다는 것은 축복이 아닌가?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소통의 주도권이 의사에서 환자 쪽으로 과하게 기울어지는 순간, 의료의 과용과 사생활의 부재라는 부작용이 생긴다. 급하지 않은 상황에도 무조건 가족주치의를 찾아가고, 친해진 후에는 의료 외적인 일을 부탁하며, 이런 의존도를 당연히 여기는 환자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공과 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만큼 의사의 피로도도 가중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지만 환자들의 끝나지 않는 수다를 이들의 막무가내식 태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쿠바에서 의사-환자의 소통이 증가하는 또 다른 까닭은 바로 의학 지식의 대중화다. 쿠바인들은 타국의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의학지식이 상당히 풍부하다. 어려운 병명은 물론이요, 전문적인 의약품 이름도 다 알고 있다. 의사와의 잦은 만남을 자가 교육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쿠바 환자가 의사의 진단에 자기 견해를 보태거나 반문을 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의사가 묻기도 전에 자기 몸을 자발적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기도 한다.

환자의 박식함은 의사들에게도 기실 반가운 소식이다. 상명하복의 관계로는 폭 넓은 치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몸을 치유하는 것은 결국 환자의 의지와 실천, 그리고 앎이다. 쿠바인들이 수동적인 환자의 상에서 벗어나 소통의 주체로 설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지식이라는 구체적인 힘이다. 지식이 바탕이 되지 않았더라면, 제 아무리 국민 친화적인 시스템과 친근한 쿠바 문화로도 이 정도의 적극성을 형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쿠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제공=김해완)

이 집단지식은 의료가 시스템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음을 증명한다. 쿠바인들의 사적인 네트워크에는 반드시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 가족 중에 없다면 친구들 중에, 친구들 사이에도 없다면 이웃에라도 의사가 꼭 한 두 명은 존재한다. 그래서 쿠바인들은 아프면 우선 가까운 의사를 찾는다. 그리고 진심 어린 걱정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땅에 스며든 물이 뿌리를 통해 나무를 키우는 수액이 되듯이, 쿠바 땅에 흩뿌려진 의료 지식은 의사와의 대화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의 삶을 물들여간다.

그렇게 쿠바 의료 현장에는 ‘헌신적인 의사’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환자’라는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가 탄생한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동화처럼 평화롭기는커녕 전투적이다. 의료지식이 쌓일수록 환자의 ‘마이웨이’ 고집은 더 강력해지고, 이들을 다루는 의사의 내공 역시 올라간다. 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온갖 에피소드와 뒷말이 나온다.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몰래 탈출한 어린 임산부를 잡으러 가족주치의가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요, 환자가 과로로 쓰러진 의사를 발견해서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소동으로 가득 찬 것이 삶이다. 이것은 애증의 관계이며, 오래된 가족의 관계다. 의사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지만, 환자들은 또한 의사의 노고와 희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들이다. 그래서 환자를 살리는 의사들은 거꾸로 자신의 환자들 덕분에 살아가기도 한다. 이 관계가, 이 활기가 환자의 삶이 좀 더 너그럽게 병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쿠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제공=김해완)
쿠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제공=김해완)
쿠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제공=김해완)

 

김해완 (쿠바 아바나 의대)

 

김해완  godhks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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